오스왈도 파다(Oswaldo Fad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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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벨트 10단은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진정한 개척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오직 소수만이 받았고, 모두 그레이시 가의 일원에게 돌아갔다. 이는 그레이시 가문이 주짓수라는 예술의 확산에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면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종종 BJJ의 역사에서 제외되는, 진정으로 예술을 앞으로 전진시킨 적어도 한 사람이 있다.

기본 정보
국적 브라질
이름오스왈도 파다(Oswaldo Baptista Fadda)
소속 Academia FADDA
주력기술 그의 아카데미는 풋락(Footlocks)이 유명하다
격투 기반브라질 유술, 유도
계열미츠요 마에다(Mitsuyo Maeda) > 루이즈 프랑카(Luiz Franca) > 오스왈도 파다(Oswaldo Fadda)

 
오스왈도 파다(1921-2005)는 카를로스, 엘리우와 동 시기에 같은 원천으로부터 주짓수를 배운 진정한 개척자였다. “콘데 코마”라는 별명을 가졌던 마에다 미츠요는 그레이시 가문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유도가였다. 동시에, 그는 카를로스와 엘리오에게 주짓수를 알려준 것처럼, 오스왈도 파다에게 주짓수를 알려준 루이스 프랑카라는 사람을 가르쳤다.
파다는 리오의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프랑카로부터 블랙 벨트를 받은 후, 그는 공원이나 해변 같은 정통적이지 않은 장소들에서 무료로 주짓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금이 부족했기에, 그는 지역 신문의 부고란에 그의 도장을 홍보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파다는 레그락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레그락은 “더러운 도둑놈” 취급을 받으며 그래플링 마샬 아츠계에서 멸시를 받았다. 그 당시 그레이시 도장에서는 레그락이 가난한 빈민 계층의 기술임을 암시하기 위해 “교외”의 기술이라고 불렀다.
결국, 파다는 엘리오 그레이시 도장에 대한 도전을 감행했다. 그는 그레이시 가문에게 대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그레이시에 도전하고 싶다. 우리는 그들을 위협적인 적으로서 존중하지만,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도전에 준비된 스무 명의 학생이 있다.”

이는 그 당시로써는 무척 대담한 발언이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대중화되고 있다. 엘리오는 파다의 도전을 받아들여 자신의 도장에서 시합을 열었다.

파다의 팀은 스무 경기 중 열아홉 경기에서 이기며 승리했다. 대부분이 레그락을 사용해 이겼다고 한다. 이벤트의 증인들은 엘리오의 제자들이 레그락을 시도하는 파다의 제자들을 향해 가난한 이들의 직업으로 간주하였던 “구두닦이”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그레이시 도장이 파다에게 패배한 이후 니 리핑(역주-상대방의 다리를 반대쪽 다리로 교차해 잡는 행위)이 오늘날 시합에서 금지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파다와 엘리오가 시합을 했으며 파다는 엘리오를 기권시킨 최초의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긴 해도, 이 이야기는 명백히 논란이 된다. 파다의 계보가 이를 진실로서 격렬히 방어할 때, 그레이시 계보는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한다. 좋을 대로 받아들이시길.

도전에서 승리한 이후, 파다는 주짓수에 대한 그레이시 가문의 독점을 끝냈노라 주장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파다에게 주짓수는 그레이시의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엘리오는 말했다. 두 번째 도전은 엘리오가 감행했지만, 일차전과 비슷한 결과였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정보는 거의 없다. 만약 두 번째 시합이 있었다면, 그것은 비공식 시합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아마도 실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지나며, 파다의 계보는 약하게 성장했다. 그레이시 계보는 미국 내에서 주짓수의 대중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칼슨 그레이시의 제자 중 한 명인 페데네이라스는 결국 오늘날 건재한 노바 우니앙을 만들기 위해 파다의 제자 중 하나인 웬델 알렉산더와 합류했다. 파다의 계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는 바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네 번이나 오른 호돌포 비에이라일 것이다.

오늘날, 파다는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그에게는 10단의 등급이 없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에게, 그가 이러한 영예로부터 제외된 것은 불공평해 보인다. 파다는 진정으로 예술의 개척자였다. 그는 너무나 가난해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주짓수를 선사했다.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는 어디를 가든 주짓수를 옹호하고, 알렸다. 파다는 그가 주짓수를 위해 행한 것으로도 사후에 그에게 수여된 명예를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