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

0
5860

1966년 엘리오 그레이시의 여섯번째 아들로 태어난 호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주싯수를 접했고 8세 때부터 토너먼트에 출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수차례 토너먼트에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17세의 호이스는 큰형 호리온의 부름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미 1978년에 미국에 정착하여 밑바닥에서부터 생계를 꾸려오던 호리온은 어느덧 100명 가까운 문하생을 보유하고 있었다. 파이터로서의 재능 뿐 아니라 사업가로서의 수완도 뛰어났던 그는 미국에서 인맥을 쌓으며 사업확장에도 열심이었고, 호이스는 이런 호리온을 대신하여 사범대리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시절, 호이스는 수많은 도장 깨기 도전자들과 대결해 승리했다고 한다. 가라데, 쿵후 등 많은 격투가들이 그에게 패배했고, 이 장면들을 담은 비디오는 고스란히 홍보영상으로 편집되어 호리온의 ’그레이시 주짓수’ 홍보에 이용되었다.

1993년 호리온은 미국의 지인들과 모종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세계 유수의 격투가들을 불러모아 펼치는 격투 토너먼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UFC의 시작이었다. 호리온의 지명으로 참가 선수들이 결정되었고, 이들과 맞설 그레이시의 대표자를 결정할 차례가 돌아왔다. 부친 엘리오가 브라질에서 거뒀던 승리로 작은 체구로 거한들에게 승리한다라는 컨셉이 가진 매력을 잘 알고 있던 호리온은 켄 샴락, 제라드 고르듀, 타이라 툴리 등의 거구와 맞설 후보자들을 추려 보았다.

힉슨 그레이시는 일족 최강으로 일컬어지고 있었지만 체격이 너무 커서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고, 무엇보다 도장 문제로 호리온과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호일러 그레이시는 체격도 작고 화려하고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작기 때문에 혹여라도 패배할 위험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선수가 바로 호이스였다. 얼핏 보기에는 호리호리하고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인한 육체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부터 늘 곁에 있어준 호이스에 대한 신뢰도 남달랐을 것이다.

UFC

1993년 11월 펼쳐진 원데이 토너먼트의 1차전 상대는 전직 복서인 아트 짐머슨이었다. 한 손에만 복싱 글러브를 낀 채 등장한 짐머슨은 호이스가 마운트를 빼앗고 박치기를 시전하자마자 탭을 쳐버렸다.

2차전에서 만난 상대는 일본 Pancrase의 제왕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인 켄 샴락이었다. 샴락은 호이스의 태클을 막아내며 오히려 겨드랑이를 파 톱 포지션을 잡고 마운트를 시도한다. 호이스는 샴락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 마운트를 저지한 후 가드에서 다리로 허리를 감아 일어서려는 샴락을 다시 그라운드로 끌고 내려왔다. 호이스는 가드에서 샴락의 오른팔을 잡고 있었고, 샴락은 호이스의 왼쪽 다리를 잡고 하체관절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오른팔이 잡혀 있던 상황에서 뒤로 누워버렸기 때문에 상위를 호이스에게 빼앗겨 버렸고, 호이스는 몸을 일으키는 샴락에게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성공시키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 57초.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3차전에서 만난 상대는 극진공수도의 제라드 고르듀였다. 허나 샴락과 싸우면서도 상처 하나 없이 올라온 호이스와는 달리 고르듀는 1차전에서 스모 선수인 타이라 툴리를 만나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1] 하지만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고르듀는 2회전에서 자신보다 덩치가 큰 킥복서를 KO시키고 결승전까지 왔다. 호이스는 테이크 다운에 이은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고르듀를 1분 44초만에 제압하며 UFC 초대 대회의 우승자가 되었다.

1994년 3월에 열린 UFC 2 토너먼트에서는 하루에 4번의 대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결승에서 만난 태권도 베이스의 입식 타격가 패트릭 스미스(앤디 훅을 이긴 적도 있다!)를 1분 17초만에 쓰러뜨렸다.

그러나 1994년 9월의 UFC 3 토너먼트에서 호이스는 제대로 임자를 만나게 된다. 막싸움계의 거성으로 일컬어지는 키모 레오폴도와 머리끄덩이를 쥐어뜯는 진흙탕 싸움 끝에 탈진해버린 것이다. 키모와의 대결은 암록으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나치게 체력을 소진해버린 호이스는 다음 상대인 헤럴드 하워드와의 경기에서 기권하고 만다.[2]

그레이시도 한물 간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으나, 1994년 12월 출전한 UFC 4 토너먼트에서 키스 해크니, 댄 세번 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압하며 정상에 오르며 이러한 목소리들을 모두 잠재웠다. 결승에서 만난 세번의 강인한 육체에 눌려 상위를 내주었으나, 15분간 계속된 가드 게임에서 한순간에 트라이앵글 초크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1995년 4월 UFC 5에는 토너먼트가 아닌 원매치 이벤트에 출전, 기다리고 기다리던 켄 샴락과의 2차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지리한 공방을 주고받은 끝에 무승부가 선언된다. 특히 장기전 전략을 들고 나왔던 샴락은 관중들의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 한편 호이스와 샴락이 불참한 채 진행되었던 토너먼트에서는 4회 준우승자인 세번이 우승을 차지했다.

UFC 토너먼트 3관왕에 오르며, 호이스는 그레이시 주짓수의 이름을 전 미국에 널리 알렸다. 특히 토너먼트 1에서 일본 Pancrase의 켄 샴락을 꺾은 일은 미국을 넘어 일본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UFC 5를 마지막으로 NHB가 막을 내리고 글러브, 판정, 라운드제 등 룰이 도입되면서 그레이시는 UFC를 떠나게 된다.

파이팅 스타일

아직 그라운드와 서브미션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수준높은 그라운드 기술을 선보이며 넘사벽의 실력을 구축했다. 격투기란 으례 입식타격기를 연상했었고 그래플러들조차도 대개 관절기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엄청난 깊이를 가진 그레이시 주짓수는 그야말로 사기에 가까운 전법이었다. 노업 저글링 사이에 뛰어든 다크 템플러랄까.

초창기에 호이스가 보여준 모습은 ’닥치고 그라운드’였다. 일단 상대를 넘어뜨린 후, 가드패스, 섭미션으로 가는 주짓떼루의 필승공식을 보여주었다. 그라운드와 스탠딩의 개념은 물론 테이크다운 디펜스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어있지 않던 시절 상대 선수들은 호이스의 태클 한방에 추풍납엽처럼 나가떨어졌고 일단 그라운드로 가면 일사천리였다. 샴락이나 세번 등 파워리프터형 레슬러들에게는 역으로 깔리기도 했으나 가드에서 섭밋시켜버렸다. 이렇듯 상위와 하위를 가리지 않고 상대의 기술을 무력화하며 자유자재로 관절기를 완성시키는 모습은 마치 마술사와도 같았다. 타격에 대처하기 위해 주짓수 이외에도 스스로 복싱등 타격기를 연마하기도 했다. 도복을 정말 잘 활용하기도 했다.[6]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도 점차 그레이시의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하자 그의 연승행진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사쿠라바는 호이스의 움직임과 전략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호이스의 도복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했다.[7] 룰이 도입되고 규정이 바뀌면서 MMA가 스스로 진화했고, 이에 따라 선수들도 세대를 거듭하며 기량이 놀랍도록 향상되면서 예전과 같은 극강의 포스는 잃어버리게 되었다.

특히 UFC 60에서 가진 맷 휴즈와의 대결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클린치에서 오히려 자신이 TD를 당했고 사이드 마운트에서 무리하게 빠져나오려다가 백 마운트를 잡힌 뒤에 파운딩에 떡실신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MMA 선수들의 TD 디펜스 능력이 향상되었고 주짓수 스킬이 상향평준화되었기 때문. 당시 40세였던 나이를 패인으로 들 수도 있으나 기량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사실 토너먼트 시절의 UFC는 제대로된 프로선수들의 경기보다는 무규칙인데다가 프로레슬링이나 레슬링 복싱등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이 별다른 대비없이 출전하던 곳이기에 이때와는 레벨자체가 몇수는 아래일때의 상황이었다.
물론 MMA의 역사를 논할때마다 UFC 초창기 대회가 엄청나게 중요한 역사로 인정되고 있는건 부정할수없다.

기타

UFC 1 토너먼트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한 후에 ”나의 형인 힉슨은 나보다 10배는 강하다.”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은 ’도대체 힉슨이 누구냐’, ’호이스가 저렇게 강한데 그럼 힉슨은 얼마나 강한거냐’며 혼란에 빠졌고 대외적으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힉슨이 한순간에 유명세를 타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그레이시도.

한편 이 말로 호이스를 2인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헨조 그레이시도 힉슨이 호이스보다 훨씬 뛰어난 파이터라고 말했다. 힉슨이 세계적인 강자들과 싸우는 것을 피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레이시의 MMA용 결전병기는 호이스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힉슨이 싸움을 피한 거야 90년대 후반 이후의 이야기이고 그 전까지만 해도 발리 투도 제팬을 두 차례 평정하는 등 활약을 보인 바 있다(발리 투도 제팬은 UFC 탄생 이후에 열린 이벤트이며 UFC 1의 제랄드 고르듀도 참전했었다). 힉슨이 조 로건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UFC에 참전하지 못한 경위를 질문 받자 ’호리온이 호이스가 출전하기를 원했고, 난 호이스의 훈련 코치이자 백 업 플랜이었다. 만약에 호이스를 꺾는 상대방이 나온다면 내가 그 다음 타자로 나갈 계획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힉슨은 독자적인 길을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호리온이 자신의 사업을 통제하기 위해서 더 욕심 없는 호이스를 중용한 거라는 추측도 있다.

비록 순수 주짓수 분야에서의 업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8] MMA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현대 종합격투기 선수들 중에는 어린 시절 호이스에 매료되어 진로를 결정한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는 UFC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료토 마치다, UFC 헤비급 챔피언 프랭크 미어, PRIDE 2006 웰터급 GP 준우승자 데니스 강 등이 있다. 사실 하나하나 따지자면 끝이 없을 정도. 특히 미국에서는 UFC의 영향으로 힉슨을 능가하는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MMA가 아니라 스포츠 주짓수 쪽을 봐도 인터뷰를 보면 십중팔구 ’호이스를 보고 주짓수를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UFC 1 토너먼트는 종합격투기의 역사를 논할 때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대회이다. 카와하라 마사토시의 만화 수라의 문 또한 이 대회를 오마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토너먼트의 참가선수들은 그레이시측의 지명으로 결정되었고 대진 또한 호리온이 결정했는데 그레이시에게 상당히 유리한 대진이었기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즉, 상성상 불리한 툴리오를 고르듀에게 붙이고 호이스는 듣보잡 복서인 짐머슨과 대결해서 1차전을 거저 먹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짐머슨이 승패와 관련없이 2만달러 상당의 금액을 지급받도록 계약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9] 더욱 논란이 되었다. 결승에서 만난 고르듀는 거의 만신창이가 되다시피한 몸으로 싸워 패배하였고 대진의 불합리함을 강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이는 수라의 문에서도 오마쥬도었다.

하지만 이와 관계없이 호이스는 2차전에서 샴락이라는 최강의 난적을 스스로 제압했고, 고르듀전 역시 부상의 덕을 보긴 했으나 애초에 기량 차이가 넘사벽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호이스의 기량은 원매치 방식으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토너먼트의 특성상 보다 확실하게 우승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10] 여담으로 고르듀는 호이스의 귀를 물어뜯으려 했었다.[11]

발리 투도형 무규칙룰의 신봉자로 룰에 의해 스포츠화 되어가는 현대 격투기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다. 또한 격투기들이 실전성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Inside BJJ에서 한 인터뷰에서는 ”격투기들을 가장 망치는 건 스포츠화야. 상대를 두들겨 패는 법보단 점수를 얻는 법을 가르치지. 요즘엔 그냥 살짝 톡 치고 점수를 얻는 식이라고. 태권도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게 아닌데 말이지. 태권도는 정권공격으로 상대의 가슴에 구멍을 뚫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술이었어. 가라테랑 유도도 마찬가지고… 유도는 메치기로 상대의 머리를 바닥에 꽂아 말 그대로 ’끝내’ 버리는 무술이었지. 그런데 이제는 그러면 안돼요. 부드럽게 메쳐야 해. 이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야. 실전에서는 점수 따위 없다고”라고 대답할 정도. 더불어 주짓수 대회에서도 점차 점수벌기식의 플레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좀 그렇다고.

U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다. 2004년 UFC 45에서 과거의 숙적이었던 켄 샴락과 함께 시상을 받으며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다른 그레이시 파이터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비공식 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2011년 3월 12일자 기사#에서 UFC 복귀가능성 언급이 나왔다.

UFC 초창기를 빛냈던 전설이었고 계약할 가능성도 있긴하다. 헨조 그레이시도 UFC에서 경기를 치른적이 있고.. n하지만 호이스의 체격을 감안할때 UFC웰터급을 뛰어야 하는데 UFC내에서도 웰터급쪽은 레슬게이 들의 경연장인 체급이다. 전성기에도 레슬링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전성기를 한참 넘긴 호이스가 이런 레슬게이들을 상대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라이트급으로 가기에는 감량의 고통도 크고 호이스의 나이 때문에 그걸 배겨내기 쉽지 않을것이다. 그냥 전설의 귀환이란 컨셉으로 데이나 화이트가 떡밥매치용으로 계약하는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제임스 토니와 비슷한 형태가 될듯

그러나 2016년 실제 복귀한 곳은 UFC가 아닌 Bellator MMA였다. 첫 상대는 켄 섐락(…)

기본 정보
국적브라질
출생일1966년 12월 12일 (49세)
출생지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
신장183cm
체중80kg
체급미들급
격투 기반브라질 유술
주요타이틀UFC 1 토너먼트 우승
UFC 2 토너먼트 우승
UFC 3 토너먼트 우승
종합격투기 전적
총시합수20전 15승 2패 3무
12서브미션, 1 TKO, 2판정
3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