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스 그레이시(Rolls Gracie)

0
4844

홀스 그레이시는 1970대 그레이시 가문이 최고가 되기 위한 중요한 인물 중 한사람이었다. 모던 주짓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운동법은 다른 무술에게도 통하는 방법이었다. 홀스는 틀림없이 스포츠 역사의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서 그레이시바하의 수장 카를린호스 그레이시, 전설의 힉슨 그레이스, UFC 영웅 호이스 그레이 외 많은 인물들과 어깨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주짓수에 큰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기본 정보
국적 브라질
생일 1951년 3월 28일
이름홀스 그레이시(Rolls Gracie)
닉네임
소속 Academia Gracie
체급 Feather 64Kg/141lb
경기기록– Campeonato de Jiu Jitsu da Guanabara Champion
(1973, 1974 weight and absolute)
– Brazilian National Wrestling Champion (1975 – freestyle)
– Pan American Wrestling Champion (1979 – freestyle)
– Pan American SamboChampion (1979)
– Pan American Sambo Bronze Medallist (1980)
계열미츠요 마에다(Mitsuyo Maeda) > 카를로스 그레이시(Carlos Gracie)>
엘리오 그레이시(Hello Gracie) > 홀스 그레이시(Rolls Gracie)

홀스 그레이시의 생애

홀스 그레이시는 브라질의 코파카바나 지방에서 태어났다. 홀스 그레이시는 윈드서핑, 승마, 카레이싱, 행글라이딩에도 역시 열심히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홀스의 스피드, 힘, 경기 운용력은 그가 65kg이란 사실을 믿기지 못할정도로 엄청났고 그의 타격력 또한 다른 유술 파이터들에게서는 찾아볼수 없는 것이었다.

홀스 그레이시는 카를로스 그레이시(그레이시 형제들 중 가장맏형)의 첫번째아내인 제니가 더이상 아이 갖기를 거부하여 다른 아내인 클라우디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부인인 제니는 홀스 그레이시를 키우길 거부하여 엘리오 그레이시에 의해서 성장하였다. 6개월후 엘리오는 호리온, 헬슨을 갖게 되었고 몇년 후엔 힉슨 그레이시가 태어난다. 엘리오의 말에 의하면 홀스는 어떤 스포츠라도 열심히하며 건강하고 아주 팔팔한 아이였다고 한다.

홀스는 11살때부터 유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일주일에 3번씩은 친아버지를 만남)
그의 친구인 ‘핌포’의 말에 의하면 홀스는 그의 운전기사가 차를 닦고난 후 차에 파파야 열매를 던져 차를 더럽히는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장이였다고한다.

홀스는 아주어려서부터 그레이시 가문의 다이어트에 충실하였고 단 한끼니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이점을 보면 정말 성실하고 인내가 많은 사람이였던 것 같다.) 12살때 홀스는 여행사에서 일하는 그의 어머니 덕분에 미국여행을 자주하였고 이때 영어를 익히게 되었다.

18살전에는 유럽 여행을 통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어느날 “씨세로”라는 거인이 홀스에게 도전하였다. 도전자 씨세로는 힘이 너무나 강해 홀스가 겨우겨우 이길수 있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홀스는 이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등산, 마라톤에 집중하며 자신을 단련하였다.

1970년대 칼슨 그레이시의 최고 수제자 서지오 이니스(칼레이 그레이시를 이김)과의 싸움에서 홀스가 아주 쉽게 승리하였는데 그를 쉽게 이길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힘든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홀스는 칼슨 그레이시와 자주 훈련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칼슨 그레이시가 아주 많은 기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2살때 홀스는 구마나바라라는 브라질 지방 벨레투도 챔피언이 된다.그의 친구들은 홀스와 같이 운동하려고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따라다녔다.

1974년 그는 칼슨그레이시 스쿨에서 가르치기를 그만두고 비디오 카메라를 구입하여 (브라질에서 최초로 비디오 카메라를 보유) 그의 테크닉을 비디오에 담는다.

그가 만든 주짓수 연합은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그 유명한 “ALLIANCE” 이고 다른하나는 “BRAZILIAN JIU-JITSU FEDERATION”이다 호일러 그레이시의 말에 의하면 홀스는 가라데 경기에도 아주 많이 우승하였다고 한다.
홀스의 시합을 지켜본 사람들에 의하면 그가 지치는 것을 본적이 없고 모든 시합을 아주빨리 끝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많은 레슬링 그레코로만, 삼보대회에서도 우승하였다.

1976년 어느 TV쇼에서 엘리오와 호리온이 유술을 홍보하자 이를 지켜본 어느 가라데 팀에서 그레이시 가문에게 도전한다.(언제나 그렇듯..물론 그레이시 가문 사람들이 가라데 선수들을 떡으로 만든다.)
홀스의 명성이 더해감에 따라 아무도 그에게 도전하는 자가 없었다.

홀스는 미국뉴욕을 자주방문 하였는데 이때 밥 엔더슨 이라는 5번 네셔널 레슬링 챔피언과 친구가 되고 엔더슨은 가끔 브라질을 방문하여 홀스의 제자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쳤는데 엔더슨이 미국으로 돌아 가기전 홀스에게 도전하였다. 하지만 40KG이라는 몸무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홀스는 엔더슨을 이긴다.
2달후 미국에서 열린 삼보미국챔피언십에서 홀스는 쉽게 우승을 거머쥐고 다음날 무제한급 경기에서도 쉽게 우승한다. 이에 놀란 미국 무술연합에서는 연봉 6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조건으로 홀스가 미국에서 유술을 가르치기를 바랬지만 엘리오 그레이시의 반대로 브라질에 머문다.

1982년 6월 6일, 홀스가 31살때 그는 그의 친구 루이스 펠란도와 헹글라이딩을 하러간다. 2번 연습에서 실패한 홀스는 열이 받아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행글라이딩을 시도하다가 추락해 즉사하였다.

E.P) 홀스의 취침시간은 항상 8시였다고 한다. 그리고 힉슨 그레이시의 말에 의하면 힉슨은 홀스를 이길수 없었고 홀스가 힉슨보다 훨씬 더 빨랐다고 한다.